디지털 리터러시

초등 디지털 리터러시 교과서가 다루지 않는 내용들

wobbi 2025. 7. 12. 12:44

리터러시는 ‘사용법’이 아닌 ‘삶의 태도’다

요즘 초등학생은 디지털에 익숙하다 못해, 이미 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 과제를 해결하고, 유튜브로 세상의 흐름을 배우며, AI 챗봇에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교육부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포함한 정보 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며, 2025년 개편 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교 단계부터 디지털 리터러시가 정규 교과의 일부로 포함될 예정이다.

 

초등 디지털 리터러시 교과서


하지만 교과서만으로 충분할까? 실제로 초등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은 대부분 기본적인 기기 조작법, 간단한 정보 검색법, 온라인 에티켓 등 ‘기술 중심’ 내용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현실 속 아이들이 마주하는 디지털 세계는 훨씬 더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초등 디지털 리터러시 교과서가 다루지 못하는 실제적이고 본질적인 내용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왜 그것들이 지금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보완되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리터러시는 ‘어떤 앱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느냐’가 핵심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지금, 초등 시기부터 준비되어야 한다.

 

 

교과서가 놓치고 있는 3가지 핵심 영역

① 현실과 괴리된 '이론 중심'의 커리큘럼

초등 디지털 리터러시 교과서는 대부분 인터넷의 정의, 정보 검색 방법, 온라인에서의 바른 태도 같은 항목으로 구성된다. 물론 이러한 기초 교육은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실제로 마주하는 디지털 환경은 틱톡 알고리즘, 유튜브 쇼츠 속 선정성, 온라인 게임 내 채팅, SNS 내 과장된 자기표현, 광고와 콘텐츠의 경계 혼란 등 훨씬 더 현실적이고 직접적이다.

예를 들어, 교과서에서는 “유해 사이트에 접속하지 마세요”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유해'와 '재미' 사이에서 갈등하며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 필요한 건 추상적인 정의가 아니라, 맥락을 읽는 힘과 가치 판단 기준이다.

또한 교과서에서는 가짜 뉴스를 구별하는 법을 다루더라도, 실제 SNS 피드 속의 광고성 콘텐츠나, 친구가 공유한 자극적 영상이 ‘진짜냐 가짜냐’를 구별하는 훈련은 빠져 있다. 정보 판단의 실전력은 교과서보다 생활 속에서 훨씬 자주 요구되고 있으며, 현재의 커리큘럼은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② 온라인 표현과 감정 조절 능력 교육의 부재

아이들은 온라인에서 친구와 채팅하고, 댓글을 달며, 영상을 올리고, '좋아요'를 누른다. 그런데 교과서에서는 이런 표현과 소통의 기술에 대한 심화한 가이드를 제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욕설을 쓰지 말자”, “다른 사람을 놀리지 말자”는 수준에서 머무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단톡방 따돌림, '좋아요' 수로 줄 세우기, 친구 사진 몰래 공유하기, 누군가의 실수를 캡처해 조롱하기 등 훨씬 정교하고 복합적인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이럴 때 아이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상대방의 감정을 어떻게 헤아려야 하는지, 온라인에서 발생한 갈등을 어떻게 해석하고 조율할 것인지를 배워야 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정보 능력 이전에 관계의 태도와 감정의 조절력을 포함하는 교육이다. 그러나 현재 교과서는 이러한 심리적, 사회적 리터러시 영역을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 갈등에 휘말린 아이가 “그냥 인터넷인데 뭐 어때요?”라고 말하는 이유는, 온라인도 현실이며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교과서가 충분히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③ 플랫폼 구조와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 부족

아이들이 하루 종일 들여다보는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은 단순한 콘텐츠 모음이 아니다. 이 플랫폼은 사용자의 클릭, 체류 시간, '좋아요' 반응에 따라 콘텐츠를 추천하고 강화하는 알고리즘 구조로 운영된다. 그런데 교과서는 대부분 이 구조를 설명하지 않거나, 단편적인 소개에 그친다.

이에 따라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콘텐츠가 아니라, 플랫폼이 보여주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게 되며, 점점 더 자극적인 영상, 강한 이미지, 감정적인 표현에 노출된다. 이는 주의력 저하, 비교 심리, 감정 과잉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란 단순히 '영상을 클릭할 줄 아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영상이 나에게 추천됐는지, 이 추천이 어떤 소비 패턴을 유도하는지, 내가 진짜 원하는 콘텐츠는 무엇인지를 스스로 인식하는 힘이다. 이런 플랫폼 기반의 비판적 사고는 교과서가 아닌 실제 콘텐츠 해석 활동, 프로젝트형 활동에서 훈련되어야 한다.


교과서 그 이후: 초등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의 방향

실생활 밀착형 콘텐츠 분석 수업 도입

교실 속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은 ‘진짜 아이들이 보고 있는 콘텐츠’를 분석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인기 유튜버의 영상 중 일부를 보며 표현 방식, 정보 출처, 메시지의 숨겨진 의도, 광고 여부, 감정 유도 방식 등을 분석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단순한 시청자가 아니라 ‘생각하는 시청자’로 성장하게 된다.

또한 틱톡 영상 속 챌린지나 필터 효과가 어떤 감정 상태를 유발하는지, SNS 댓글 문화가 실제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비판적 사고 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교과서는 기초 개념을 제공하고, 학교 현장에서는 콘텐츠 기반 실전 훈련을 진행하는 구조가 이상적이다.

감정 표현·공감 훈련을 포함한 온라인 윤리 교육 강화

감정 조절 능력은 모든 리터러시의 핵심이다. 따라서 초등학생 단계부터 온라인에서의 감정 표현, 갈등 조율, 상대방의 기분 이해, 디지털 공감 훈련 등을 포함하는 심화 온라인 윤리 수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상황극을 통해 “내가 댓글로 비꼼을 당했다면 어떤 기분일까?”, “단톡방에서 소외된 친구를 위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같은 활동을 하면, 디지털에서의 표현이 실제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을 내면화할 수 있다. 이런 교육은 디지털 공간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며, 감정 중심 리터러시의 실천적 사례가 된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독립적 교과로 발전시켜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정보 과목의 일부로 가볍게 다루는 것을 넘어, 독립된 정규 교과나 학년별 연계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빠르게 진화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아이들이 정보를 해석하고, 인간답게 소통하며, 건강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생존을 위한 필수 역량이다.

디지털 기기 사용은 빠르게 배우지만, 그 기기 속 세상을 해석하고 대처하는 능력은 가르쳐주지 않으면 쉽게 자라나지 않는다. 이 차이를 메우기 위해선, 교과서 바깥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더 진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