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가르치지만, '판단'은 가르치지 않는다
현대의 학교 교육은 점차 디지털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코딩 교육이 의무화되고,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되며, AI 기반 학습 플랫폼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빠르게 진화하는 교육 현장 속에서도 여전히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영역이 있다. 바로,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의 ‘실질적인 역량’이다. 학교에서는 주로 디지털 도구의 사용법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며, 정보통신기술(ICT) 교육과 디지털 리터러시를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진정한 디지털 리터러시란,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며, 윤리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진짜 리터러시’가 정규 교육과정 안에 체계적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학생들이 가장 자주 마주하는 현실적 상황들, 예를 들어 유튜브 알고리즘의 유혹, 허위 정보의 홍수, 온라인 관계에서의 감정 소모 등은 교과서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디지털 리터러시의 핵심 역량은 오히려 삶 속에서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 교육 시스템이 놓치고 있는,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디지털 리터러시 핵심 역량 5가지를 소개하고, 그 중요성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짚어본다.
학교에서 다루지 않는 디지털 리터러시 핵심 역량
알고리즘에 저항하는 정보 선택 능력
오늘날 우리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받는다. 이 시스템은 사용자의 검색 기록과 클릭 패턴을 기반으로 자동으로 콘텐츠를 추천한다. 겉보기엔 편리하지만, 이 구조는 사용자를 점점 더 편향된 정보 환경 속으로 가두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을 만들어낸다.
학교에서는 유튜브 사용을 자제하라고 말할 뿐, 알고리즘이 사용자를 어떻게 조작하는지를 분석하거나 이를 극복하는 전략은 잘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디지털 리터러시의 핵심은 알고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정보를 ‘선택’하는 주체로서 행동하는 능력이다.
디지털 감정 조절과 ‘온라인 자아’ 관리 능력
10대 청소년은 하루 평균 3시간 이상을 스마트폰에서 보내며, 그중 상당 시간을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용한다. 이때 발생하는 갈등, 비교, 스트레스는 오프라인보다 더 강한 정서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감정 조절’이나 ‘온라인 정체성 관리’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현대인의 디지털 리터러시에는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필요한 경우 디지털 디톡스(detox)를 실천할 수 있는 자기 조절 능력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심리적 리터러시’에 가깝고, 특히 초등~고등학생 시기에 매우 중요하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윤리적 표현 능력
인터넷에서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공격하는 댓글을 다는 행위는 실제 세계에서의 폭력만큼이나 큰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익명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기 쉬워, 자신의 표현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는 주로 오프라인 기준의 예절을 가르치지만, 디지털 공간에서의 표현 윤리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디지털 리터러시에서 중요한 것은 자유롭게 표현하되, 타인의 권리와 감정을 존중하는 능력이다. 이는 단순한 규칙 숙지가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 ‘공존’을 위한 사고 훈련이다.
학교 교육이 아직 다루지 못한 핵심 역량
시각 정보 해석 및 조작 인식 능력
현대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는 더 이상 글로만 제공되지 않는다. 이미지, 영상, 밈(meme), 인포그래픽, 숏폼 콘텐츠 등 시각 정보가 정보를 전달하는 주요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단순히 흘려보는 수준에 그친다.
특히 SNS에는 조작된 사진, 자극적인 섬네일, 과장된 영상 편집이 빈번하게 등장하며, 이는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시각 콘텐츠에 대한 비판적 읽기(Critical Viewing)를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디지털 리터러시에는 텍스트만 아니라 비언어적 정보에 대한 해석 능력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생성형 AI 활용 시의 비판적 사고 능력
2023년 이후, 생성형 AI(ChatGPT, Claude 등)의 등장은 학생들의 학습 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과제를 대신 써주거나, 요약해 주는 AI의 편리함에 많은 학생들이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I가 제공하는 정보의 정확도, 편향, 맥락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능력은 충분히 교육되지 않았다.
AI를 사용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비판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판단력과 책임 의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AI 사용법’이 아니라, AI를 도구로 다루되 인간의 사고력을 기반으로 결정할 수 있는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이다.
학교 밖에서 키워야 할 디지털 생존력
지금의 학교 교육은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주제를 다루고는 있지만, 현실에서 학생들이 마주하는 상황과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교과서에 나오는 ‘정보의 사실 여부 판별’이나 ‘사이버 폭력 예방’ 같은 주제는 이론 중심이며, 실제로는 알고리즘 조작, SNS 피로감, 생성형 AI의 무비판적 사용 등 훨씬 더 복잡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진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은 교과서 바깥에서 시작돼야 한다. 부모는 자녀와 함께 온라인 콘텐츠를 평가해 보고, 교사는 디지털 일기를 통해 학생의 온라인 행동을 되돌아보게 도와야 한다. 또한 사회 전반에서는 청소년 대상의 체험형 워크숍, 시뮬레이션 교육, 디지털 습관 설계 훈련 등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존력은 더 이상 ‘기술’이 아니라, 판단력과 태도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이라도 이 5가지 핵심 역량을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반드시 길러야 한다. 기술은 계속 진화하지만,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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